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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s Dias 운동

2. Tres Dias의 정체성 : Tres Dias 넌 뭐니?

금구 2016. 6. 4. 08:14

 

 

 

 

 

 

 

 

1. 트레스 디아스는 개신교인들만을 위한 영성훈련 프로그램인가?

- 아니다.

 

2. 트레스 디아스는 로마 가톨릭(천주교)적인가?

- 아니다.

 

3. 트레스 디아스는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인가?

- 그렇다.

 

 

트레스 디아스가 한국에 도입되면서 많은 분들 사이에서 수많은 논란이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천주교에서 만들어졌으니 천주교적인 요소가 많아 문제가 있다는 등, 이단성이 다분하다는 등...

 

물론 1%도 없다고 말씀드리지는 않겠다. 대신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꾸르실료 주말과 트레스 디아스 주말은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부분들이 존재 안 한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트레스 디아스 운동 자체가 꾸르실료 운동을 모체로 해서 태동되고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레스 디아스와 꾸르실료의 존립기반이 되어 온 개신교와 천주교, 이 두 교회가 공유하는 교회의 전통과 역사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단 1%의 공통요소가 전혀 없다고는 말씀 못 드린다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드리고 싶다.

 

각설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록 하겠다.

 

렉터 가이드에 보면 트레스 디아스의 창설자인 데이브 맥메니갈 형제가 1980년 미드허드슨 트레스 디아스 퇴수회에서 발표한 "트레스 디아스의 기원"이라는 토크에서 분명 트레스 디아스가 꾸르실료 운동에서 영향받아 여러 지역의 꾸르실료 공동체들의 도움으로 시작되었다고 증언하였다.

 

트레스 디아스의 시작은 대략 다음과 같다. 당시 스페인어 꾸르실료가 미국 일부 지역에 소개되고 성공하면서 여기에 스페인어와 영어 모두를 사용할 수 있는 즉, 이중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천주교신자들이 소문을 듣고 이들 스페인어 꾸르실료를 경험하고 나와 영어로 진행되는 꾸르실료 주말을 준비하여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것 또한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에 이른다. 바로 이 영어로 진행되는 꾸르실료에 소위 "꾸르실료가 너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참가하게 된 개신교인들이 점차 늘게 되면서 꾸르실료 지도자들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꾸르실료는 처음부터 오직 천주교인들만을 대상으로 해서 로마 가톨릭 크리스챤으로서의 기본을 생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영성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천주교의 전통과는 다른 전통을 지닌 개신교인들이 꾸르실료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점차 계속해서 늘어남에 따라 그들 나름대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데 고심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꾸르실료를 경험하고 팀 멤버로 참여하고 있던 소수의 개신교인 중에 한 명이었던 데이브 맥메니갈이 개신교인들을 위한 꾸르실료 주말을 개최하기 위한 열망을 갖고 기도하면서 함께 이 일을 이뤄나갈 동역자들을 천주교 꾸르실료 운동 지도자들과 꾸르실료를 경험한 개신교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모은 뒤 꾸르실료 공동체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스페인어로 3일이라는 이름의 트레스 디아스 주말을 개최하게 된다(이렇게 된데에는 당시 꾸르실료 운동의 지도자들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에큐메니칼 정신에 따라 천주교와 교회 전통이 다른 개신교인들을 위해 개신교의 전통에 입각해 개신교인들이 운영하는 개신교 꾸르실료 운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돕자는 결의가 천주교 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트레스 디아스 운동과 주말들을 준비하고 개최하고 보급하면서 그는 이 운동을 단순히 개신교인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교파의 그리스도교인들을 위한 "에큐메니칼 꾸르실료 운동"으로서의 트레스 디아스 운동으로 그 성격과 정체성을 초기부터 확립시켜 나갔다. 이렇게 된데에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초창기 우리는 몇 번의 Weekend를 개최하면서 팔랑카 때문에 꾸르실료 공동체를 온전히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위해 Weekend 기간 내내 찾아와 주었습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오직 단 한 번의 그 떨리는 순간은 바로 Tres Dias 남자 3회의 클로징에서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당 안으로 클로징을 하기 위해 이동했는데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장소를 가득 채워주어 소수의 참가자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게 에큐메니칼 운동의 하나로서의 Tres Dias’ 라는 주제/테마를 주었습니다. Tres Dias의 에큐메니칼 성향은 지난 8년 동안 약점이면서 동시에 많은 아름다움과 기쁨의 원천이었습니다. 어떤 가톨릭 팀 멤버들은 첫 번째 Tres Dias Weekend를 준비하면서 애찬식(Agape meal) 형태의 성찬예식을 수용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많은 개신교의 형제들과 자매들이 얼마나 깊은 경외감을 가지고 성찬식에 임하는지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처음에) 계획했던 것과 같이 가볍게 그것을 대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자기성찰을 할 수 있도록 몸부림치게 했고 그 다음엔 우리가 생각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깊은 이해를 나눌 수 있게 했습니다. 어떤 개신교인들은 꾸료실료가 개신교인들의 참가를 제한해 왔던 것처럼 가톨릭교인들이 Tres Dias에 참가/관여하는 것을 차단하기 원했습니다. 저는 대다수의 견해가 여전히 시종일관되게 그 같은 배제를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다를지라도 우리는 한 믿음을 나누었고 죄들을 사함받기 위한 하나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와 같이 분명한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입니다(렉터 가이드 '트레스디아스의 기원' 토크 중에서)."

 

"트레스 디아스의 역사 : Tres Dias1949년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서 영적 쇄신하는 도구 중의 하나로 사용되어 온 "크리스챤 생활의 꾸르실료"에서 유래되었습니다. Tres Dias'꾸르실료의 에큐메니칼 버전(Ecumenical Version)'으로써 주님과 보다 친밀한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전에 Tres Dias나 꾸르실료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후원을 받아야만 합니다(트레스 디아스 본부에서 발간한 '트레스 디아스 소개 브로슈어' 중에서)."

 

 

1. 트레스 디아스는 개신교인들만을 위한 영성훈련 프로그램인가?

- 아니다.

 

- 미국 꾸르실료 운동 지도자들은 천주교인들만을 위한 꾸르실료 주말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개신교인들, 성공회교인들이 점차 늘게 되면서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비가톨릭신자들이 그들이 속해 있는 각 교회의 전통에 따라 각자의 꾸르실료를 할 수 있도록 결정하고 각각 초창기에 지원했다. 이에 따라 성공회 꾸르실료, 미장로교 꾸르실료, 미연합감리교 꾸르실료(후에 명칭사용 문제로 미연합감리교회는 '엠마오가는길(한국명칭)' 또는 'Walk to Emmaus'라는 이름의 웨슬리신학과 전통에 입각하여 개작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음), 루터교 꾸르실료(이 또한 명칭문제로 Via de Cristo로 이름을 바꿈) 등이 각각 태동되고 운영되고 있다.

 

- 그러나 트레스 디아스는 처음에 미국 꾸르실료 각 공동체들의 지원아래 가톨릭신자들과 개신교인들이 모여 첫 준비모임을 시작했지만 특정 교단/교회의 교인들을 그 참가대상으로 국한시키거나 제한하는 것을 규정화하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 운동의 정체성, 운영과 방향성 등을 에큐메니칼 정신에 입각해 자료들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으고 이를 토대로 시작하여 운영해 왔다는 것이다. 이 특수성 내지 고유성(개인적으로 이것을 트레스 디아스 운동 초기 지도자들의 비전이라고 부르고 싶다)의 침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트레스 디아스는 특정 교단에 속해 있지 않은채 발전되어 왔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면 좋을 것 같다.

 

-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인들이 참여하지만 전적으로 개신교인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에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트레스 디아스 운동은 여러 개신교파의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성공회와 천주교, 정교회의 그리스도인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그 문을 개방했고, 또 그렇기 때문에 토크도 개신교파 위주의 신학과 신앙, 전통에 국한해 작성하고 발표하기 보다는 모든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이 트레스 디아스 주말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성례전 토크와 성찬식을 우리가 흔히 아는 '세례와 성찬' 위주의 토크나 '기념설' 위주의 성찬식이 아닌 우리와 교회 전통이 다른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도 '2개 이상의 성례전(7개의 성례전)''공재설' 등의 다양한 성찬신학과 구교와 개신교를 막론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유산인 즉, 초대교회 때부터 유래되어 전해 내려 오는 성찬예배 중에 하나인 '성 마가의 성찬예식'도 채택해 진행할 수 있도록 성찬예식서도 무려 5가지나 다양하게 발간했고, 이를 진행하는 성직자들을 위해 성례전 토크와 성찬예식에 대한 에큐메니칼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별도의 안내책자도 또한 발간했다. 트레스 디아스 공동체는 이 책자를 통해 성례전 토크와 은혜로운 성찬식 진행을 위해 아주 친절하게 교파가 다른 성직자들간에 서로의 신앙과 신학, 교회의 전통(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함으로 아름다운 신앙 안에서의 연합(일치성)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것이 무지개로 상징되는 데꼴로레스 정신이다. 5가지의 성찬예식서는 번역되었지만 아쉽게도 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별도로 발간한 녹색 안내책자는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못했다.

 

많은 개신교인들이 트레스 디아스 매뉴얼, 특히 예전의 '팀 멤버 가이드''SD가이드'에 수록된 Talk Outline, 특히 성례전 토크에 성례전 수가 2개가 아닌 7개라고 나와서 로마 가톨릭의 것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비판하고 트레스 디아스가 다분히 천주교적이라고 오해하고 이단으로 정죄 내지 비판을 해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에서 분명히 할 점은 트레스 디아스는 에큐메이칼 정신에 따라 다양한 교단/교회적 배경을 지니고 이 운동에 참여하는 평신도들과 성직자들에게 이것을 소개하는 차원이지 교리차원이나 특정 교단/교회의 전통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선포하지 않고 개인의 삶에서의 체험을 간증내지 함께 나눈다는 점이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알기로는 트레스 디아스 정신에 따라 생각해 보면 초창기 트레스 디아스 운동의 지도자들과 현 지도자들 모두 성례전 토크에서 성례전 수가 2개냐 7개냐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들이 좀 더 주목하고 강조하는 바는 바로 성례전의 숫자와는 관계없이 실제로 각자 성례전들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사로 나누는 일에 주된 타겟을 두지 않았을까 라는 점이다. 바로 그 점이 우선시 되었기 떄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성례전이 2개냐 7개냐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평신도들에게는 교파주의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기본진리를 경험하고 생활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꾸르실료 운동을 창설한 사람들의 목표는 "우리 각자가 크리스챤의 기본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크리스챤이라면 누구나 그 기본으로 생활화해야 할 것들을 실제로 살아보고 그 결과를 꾸르실료 운동에서 나누고 서로 그렇게 살도록 격려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그 기본생활이 바로 주말에 소개되고 경험되어지는 토크와 성례전, 프로그램들을 3일간 생활하면서 접하고 배워 알고 그렇게 살겠다고 스스로 결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크리스챤 생활의 꾸르실료고 또 그것이 (크리스챤 생활의 3) 트레스 디아스다.

 

트레스 디아스 운동은 성직자들의 도움과 지도를 받지만 엄밀히 말해 평신도 중심의 운동, 그것도 에큐메니칼 정신에 입각해 실시되는 운동임을 명심하자. 이것을 망각하고 특정 개신교단의 신학과 전통, 또는 개신교단 끼리의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국한시키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 입장에서 보면 이를 벗어난 움직임들이나 생각들은 모두 이단, 사이비가 되기에 충분하다. 특히 그리스도교가 개신교가 아니면 무조건 로마 가톨릭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교회 역사를 다시 공부하시라고. 하나였던 그리스도교회는 1054년에 비극적인 동서방교회의 대분열을 맞이하면서 두개가 되었다. 이 동서방교회가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인가? 아니다.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이다. 개신교는 1417년 로마 가톨릭에 항거한 루터의 종교개혁에 의해서 시작되고 초기 수많은 종교개혁 지도자들과 신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형성된 교회이다. 그 이후 영국 성공회가 로마 가톨릭에서 독립되어 나왔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교는 단순히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존재하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고 사실이다.

 

몇년 전에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 간의 신학적으로 타결된 것이 있다. 바로 구원론에 대한 일치된 신학이다. 바로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성례전이 그 다음 문제다. 성례전, 또는 성사(Sacrament)는 교부 터툴리안이 200년경 그리스어인 μυστριον(미스띠리온, 신비, 특별한 것이라는 뜻)를 라틴어로 옮긴 Sacramentum에서 파생된 말이며 말 그대로 "교회가 행하는 거룩한 일", 또는 "거룩한 예식들"을 말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때는 성례전이 2개도 아니고 7개도 아니고 아니었다. 천주교에서 오늘날과 같이 성례전의 갯수를 7개로 확립시킨 것은 15451563년까지 약 18년간에 걸쳐 이탈리아의 북부 트리엔트(Trento)에서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사는 7성사"라는 교리를 확립한데서 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에는 7성사(7성사를 포함한 여러가지의 성사들)는 존재했지만 성사 수가 7개로 확립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애시당초 성례전의 갯수는 그리 중요하지도 않았다. 갯수의 제한이 없었더는 것이다. 초대교회 문헌들을 살펴보면 어떤 지역교회에서는그 성례전의 수가 무려 30여개가 넘었던 것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종교개혁 당시 마틴 루터는 그의 저서 "교회의 발벨론 유수"에서 성례전을 2개가 아닌 고해성사까지 포함해 3개로 주장하기도 했다. 영국성공회도 가톨릭과 거의 동일하게 7성사라고 딱히 말하지 않지만 7가지 성사를 실시하고 있다. 초대교회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동방정교회는 성사수를 7개로 국한지어 보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동방정교회가 천주교와 동일하게 7성사를 주장한다고들 하는데 실상은 이렇다. 천주교와의 신학-일치위원회에서 대화를 하면서 천주교측에서 "너희 7성사 있냐?", "그게 뭔데?" "세례, 견진, 고해...", ", 그런 거라면 우리도 다 있어(훨씬 많은 숫자의 성사들 중에서 너희가 말하는 7개 다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정교회는 7개보다 훨씬 많은 성사를 시행하고 있고, 초대교회의 전통을 따라 성사의 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그러기에 성사 수를 7개로 국한시켜 말한다고 믿지마시라.)", "그래? 그런 우리하고 똑같네?" 이렇게 된 것이다. 따라서 트레스 디아스에 국한시켜 볼 때 성례전 토크를 소개함에 있어 7개가 진리라고 하지 않고 개신교 외의 교회에서 이러한 성례전들도 거행하고 있다고 소개하는 것을 가지고 천주교적이다 라고 속단하시고 비판하시는 분들을 보면...안타깝다 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속된 말로 7성사를 시행하는 교회가 비단 천주교뿐인가? 성공회는? 정교회는?

 

따라서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와 다른 전통이 있는 교회들은 다 이단인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여기에서는 신학논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니 성례전 논쟁과 관련된 자료들은 책들을 사서 보시면 충분히 아시게 될 것이다. 언제부터 무엇때문에 성례전이 7개냐, 3개냐, 2개냐 논쟁을 벌였는지... 그렇다고 하면 초대교회의 자료대로 생각해 본다면 30여개가 넘는 교회의 성례전 중에 2개든, 3개든, 7개든... 다 속해 있는 것이고 맞는다는 얘기다.

 

, 말의 요지는 성례전 토크에서 성례전의 수를 2개가 아닌 7개로 소개한다고 해서 트레스 디아스가 천주교적이다. 이단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폄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에큐메니칼적 성격을 지닌 트레스 디아스 운동에 참여하는 평신도들은 각자 속해 있는 교회의 신학과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해 준다는 에센셜조항에 따라, 각기 서로 다름을 "틀림"이 아닌 말 그대로 "다름"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다름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에 기반을 두고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트레스 디아스는 각자 다름을 보는 것에 중점을 둔 운동이 아니라 함께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동일한 믿음"을 세상에 전하고 나누는 것에 중점을 둔 평신도 중심의 운동이다. 따라서 그들은 성례전 개수가 2개냐 7개냐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실상은 그 성례전 토크를 통해서 그들이 나누고 싶은 것은 신학내용이 아닌 그들의 실생활에서 경험하고 느낀 바 즉, 각자 체험한 "성례전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예수 그리스도)"를 나누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트레스 디아스 운동의 분명한 성격과 정체성이 있기에 한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트레스 디아스 운동에서 일부 변경한 성례전 토크와 성찬식은 트레스 디아스 신조와 에센셜의 문자 그대로 따지자면 FM대로가 아닌 변질, 에센셜 위반으로 볼 수 밖에 없다.

 

1985년 한국 트레스 디아스 공동체에서 이 아름다운 트레스 디아스 운동의 전국적인 보급의 걸림돌(?) 내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것(?)으로 보고 이를 한국적인 특수한 상황이라고 간주(?)해 토크 내용 중 상당수를 삭제하거나 5가지 성찬식 중 한가지로만 국한시켜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이것이 고착화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으로 틀렸다거나 잘못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사실 이 부분은 TDKR에서 국제본부와 협의해서 한국에서만 특별하게 인정받은 사항이기도 하다. 다시말해 한국 내에서만 성례전 토크에서 7가지 성례전에 대해 소개하지 않고 2개의 성례전만을 그 내용으로 해서 진행해도 무방하다는 승인을 받았다는 말이다. 이러한 까닭에 트레스 디아스 운동은 개신교인들만을 위한 영성 프로그램으로 오해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으로 말미암아 트레스 디아스 운동이 본래 가지고 있던 그 성격과 정체성이 에큐메니칼적인 것에서 단순히 개신교인들만을 위한 것으로 국한될 수 있는 위험요소(?) 또는 침해요소(?)를 지니게 되었다고 감히 생각한다.

 

2006년 개정된 "팀 멤버와 SD(영적 지도자)를 위한 가이드"에도 다소 순화(?)/두리뭉실해진 내용이지만 여전히 "성스러운 은혜의 순간들"이라는 제목으로 기존의 7개의 성례전과 거의 유사한 내용들을 수록해 놓은 것을 보면 트레스 디아스 운동의 에큐메니칼한 성격과 정체성은 여전히 굳건하다는 사실을 살펴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을 보시는 트레스 디아스 공동체의 페스카돌들은 오해하시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따라서 이러한 트레스 디아스 운동의 역사와 관련 문헌들을 통해 트레스 디아스 운동이 단순히 개신교인들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며, 또한 천주교 꾸르실료 운동에서 유래되었다고 해서, 성례전 토크에서 성례전 개수가 2개가 아닌 7개라고 해서 무조건 천주교적인 것도 아닌, 모든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운동으로 그 범위와 내용, 성격이 확장 발전된 꾸르실료 운동의 에큐메니칼 버전임을 이해하시면 이 운동이 무엇인가를 바로 이해하셨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이유로 데이브 맥메니갈 형제가 트레스 디아스 운동 안에 남아있는 꾸르실료적 요소가 어떤게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격려한 것이고 문제가 생기면 항상 트레스 디아스 운동은 꾸르실료의 방식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띠라서

 

2. 트레스 디아스는 로마 가톨릭(천주교)적인가?

- 아니다.

 

3. 트레스 디아스는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인가?

- 그렇다.

 

라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바램이라면 이러한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트레스 디아스 운동을 단순히 개신교인들만을 위한 영성 프로그램으로 국한시키지 말았으면 싶다. 그것은 트레스 디아스 창설자들의 뜻이 아니라고 본다. 굳이 개신교로만 국한 시키려면 트레스 디아스를 포기하시고 감리교의 엠마오가는 길처럼 교단 내 평신도 운동화를 시키면 될 일이다. 그러면 이단 사이비 논쟁없이 편안하게 교단과 지교회에서 이 운동에 참여하실 수 있다. 굳이 트레스 디아스에 목맬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다. 트레스 디아스 운동에 참여하여 헌신하실 의향이 있으시면 이것은 우리가 겪어야 할 필요불가결한 어려움이자 현실이기도 하다.

 

한국 내 여러 트레스 디아스 공동체에 속한 지도자분들...에센셜을 바르게 알고 이해하고 지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