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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da Nueva 운동

5. 비다누에바에 대한 정의

금구 2016. 9. 29. 00:01

* 지난 글에서 비다누에바와 T.E.C의 차이점에 대해서 너무나 간략하게 언급을 했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의 관계자들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마 다들 아실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는 개신교 비다누에바와 가톨릭 비다누에바의 차이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한다.



1. 비다누에바란?

스페인어 "Vida Nueva"는 영어로 "New Life"이다. 문제는 이것을 한국말로 번역하는데서 이 프로그램 간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A. 개신교는 이를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New Life in Jesus)"이라고 해석을 한다. 

- 앞서 말한대로 개신교 비다누에바는 30%의 비기독교신자 청소년들이 참여하기 떄문에 이들과 또 70%의 크리스챤 청소년들이 참여한다지만 대부분 신앙생활에 소극적인 이들과 약간의 열심인 청소년들이 대부분 참여를 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말이 좋아서 그렇지 참가하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거의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든 상태이다. 아마도 실제적으로는 70%정도가 비크리스챤이고 30%정도만이 믿음을 가지고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청소년들일 확률이 높다. 따라서 개신교 비다누에바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 그럼으로써 "한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예수님을 만나 영접하여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 터닝 포인트"로써의 비다누에바 주말이 강조된다. 즉, 비다누에바 주말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 참가한 청소년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주안점을 두고 있다. 쉽게 말하면 "전도와 영접"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B. 가톨릭 비다누에바는 "새 생활"이라고 해석을 한다.

- 반면에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초창기(?) 가톨릭 비다누에바는 이런저런 이유로 성당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 소위 신앙생활을 쉬고 있는 "냉담자 천주교 청년들"이 적잖이 참석을 했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의 진행 방향이 성당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듯한 인상을 많이 받았다. 즉, '신앙 생활의 터닝 포인트'역할을 비다누에바 주말이 해 준다고나 할까? 즉, "가톨릭 신앙생활의 쇄신"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만 봐도 양 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비다누에바의 색깔이 확연히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주말의 토크와 프로그램으로 세세히 들어가면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없어 실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 좋은 프로그램을 잘만 활용하면 많은 젊은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들의 삶을 주님께 헌신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접촉점의 역할을 할텐데...비공개 프로그램이어서 일일이 다 밝히지 못하는 점을 이용해 이단 삼단 운운하는 것이 실로 안타깝다. 관심있는 목회자들도 옵저버로 참석해서 이러한 오해를 안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경험하기로는 아직까지는 현존하는 청소년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최강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분야에서 예수님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그 분과 참가자가 연결될 수 있는 그런...접촉점이 되는 프로그램...알파코스보다 더 매력적인 전도와 양육, 그리고 영성 프로그램으로써 말이다. 어떻게 어떤 관점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어찌됐든지간에 내가 본 바로는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다. 단, 흠이 하나 있다면 비공개 프로그램이라서 직접적으로 알파코스처럼 공개를 하지 못한다는 점...그것 하나 빼 놓고!!!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소위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카더라' 식의 말만 듣고 이단 삼단이라더라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 비다누에바 프로그램의 내용과 토크들, 메뉴얼은 트레스 디아스의 매뉴얼처럼 공개되지 않았다. 트레스 디아스 매뉴얼은 국제본부에서 구입할 수 있지만 이 비다누에바는 미국에서 1980년대에 한동안 중단되면서 그 자료들이 다 없어졌다. 비다누에바 메뉴얼의 토대가 T.E.C 메뉴얼이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T.E.C 초창기 매뉴얼도 구하기 힘들다. 개정판이 1997년도에 나왔는데 이것 구하기도 역시 힘들다. 유일하게 중단된 원조 미국 비다누에바의 자료들을 한국 비다누에바만이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 한국 비다누에바 마저 몇 년전부터 중단이 되었으니...안타깝기만 하다. 하루 속히 다시 한국 비다누에바가 개최되기를 소망한다.


혹시 어떤 관심이 있는 분들이 이 글이나 직접 비다누에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본 뒤 해당 자료들을 구해다가 함부로 개작하여 엉망으로 변질시키는 경우가 없었으면 한다. 그러한 경우는 트레스 디아스 하나로 족하다고 본다.


한국 개신교 내에서 트레스 디아스 운동을 어떻게 목회자들이 개교회나 교단으로 가져다가 고쳐서 어떻게 변질시켰는지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본인들이 함부로 뜯어 고친 프로그램이 최고라고 자랑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변질시킨 프로그램은 불과 몇 년이 못 돼 유명무실해지기도 했다.


트레스 디아스 국제본부에서는 그러한 경우 트레스 디아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한다. 공인받지 못한 한국 내 트레스 디아스 공동체들에 대해서 얘기를 종종 듣게 되는데 이것들을 듣다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정말 가관이다. 그렇게 변질시키니 이단이네 삼단이네 소리를 듣는 것이다. 또한 트레스 디아스도 한물 갔네 라는 소리들을 하는 것이다. 매뉴얼대로 하면 그딴 소리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다. 그것은 진짜로 트레스 디아스 운동을 잘 몰라서 하는 얘기이다.


에센셜 위반하는 트레스 디아스는 더이상 트레스 디아스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트레스 디아스라고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걸 누가 트레스 디아스라고 보증해 주는가? 국제본부도 인증해 주려고 왔다가 인증 못 해 줄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닌가?


평신도 중심의 크리스챤 운동은 목회자들이 참여하지만 어디까지나 평신도들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가 조언자와 후원자가 되어야지 간섭하고 통제하면서 군림하려들면 그 운동은 변질될 확률이 매우 크다. 이 비다누에바 운동도 평신도 중심의 초교파 크리스챤 운동이지 목회자 중심의 특정 교파의 크리스챤 운동이 결코 아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다누에바는 엄밀히 말해서 개신교 프로그램이다. T.E.C가 근간이 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철저하게 개신교화시킨 개신교 프로그램이다. 그 개신교 프로그램을 가톨릭이 다시 도입해서 또 철저히 가톨릭화 시켜 진행하고 있다. 어쨌든 나는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이 좋은 프로그램이 널리널리 보급되면서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들의 삶이 변화되어 주님의 헌신된 일꾼으로 거듭나 성장하길 원한다.